김연아 나이 키 몸무게 체중 프로필 결혼 남편 고우림 가족 학력 과거 졸업사진 남자친구
- 이슈잇슈♡
- 2023. 10. 2. 01:27
김연아 프로필 나이
생일
1990년 9월 5일 (33세)
출생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본관 경주 김씨
신체 164cm, O형
가족
아버지 김현석(58년생),
어머니 박미희,
언니 김애라(87년생),
배우자 고우림(2022년 10월 22일 결혼)
학력
신흥초등학교 (졸업)
도장중학교 (졸업)
수리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09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 수료)
종교 가톨릭 (세례명: 스텔라)
소속사 올댓스포츠
상훈
국민훈장 모란장(2012년 수훈)
체육훈장 청룡장(2016년 수훈)
김연아 이야기
김연아는대한민국의 전 국가대표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김연아는 초등학생 때부터 23세에 은퇴하기까지, 출전해서 메달을 따지 못한 대회가 없다.
김연아가 참가하면 해당 대회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해설도 많았다.
김연아의 존재는 다른 선수들이 빡세게 훈련하게 되는 계기라는 해설 등, 온갖 찬사란 찬사는 다 받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이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리스트다.
김연아는 아버지 김현석과 어머니 박미희의 차녀로, 3살 위의 언니 김애라(간호사)가 있다. 아버지는 전직 사업가로, 훈련비를 포함한 금전적인 지원을 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고 한다.
김연아의 남편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슈퍼엘리트이며 흔히 말하는 엄친아로, 그룹 포레스텔라로 활동하는 성악가 고우림이다. 남편 또한 우월한 학력과 수려한 외모로 알려져 있어 화제였다.
우리나라에서의 피겨 스케이팅은 김연아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당시 우리나라는 빙상 스포츠 중에서도 레이스에만 특화된나라였지, 피겨계에는 정부적 관심도, 국민적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도 국내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만약 김연아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계속 피겨 스케이팅 불모지로 남았을 것이다.
그만큼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피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실제로 주니어 시절 김연아가 한창 두각을 나타내던 때 포털의 뉴스 댓글에는 '시니어에서 입상해야 진짜 실력이지, 설레발치지 마라'는 악플도 많이 있었다.
사실 악플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입장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김연아 이전에도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라고 스포츠 뉴스에 소개되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그렇게 소개된 인물 중 특출나게 두각을 보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김연아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언론의 과한 설레발 전례 때문에 생긴 부정적인 견해였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김연아의 전성기 이후 차세대 피겨 선수들이 김연아만큼 대회를 제패하거나 이에 준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게 되는 본의 아닌 부작용을 낳게 되기도 했다.
국제 무대에서도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던 유럽이나 미국,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피겨계에서는 겨우 올림픽 출전권만 얻어서 그마저도 최하위권만 기록하는 수준이었다.
피겨 스케이팅이 리듬체조나 싱크로나이즈 종목과 같이 예술성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스포츠라는 특성 상, 발레리나 같은 체형과 미모가 부각되며 대중에게 어필되었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악한 지원,부상, 타국과의 비교, 연습방해 영상 등, 피날레로 편파판정 논란까지 합쳐져서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김연아는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타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선수로서의 업적을 떠나 개인적인 선행과 기부 활동 또한 많이 알려져 현재 김연아의 위치는 2000년대 등장한 스포츠 스타 중에서 최고의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인사라고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피겨요정, 국민 여동생 등 온갖 별명을 보유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나이에 주목을 받은 박태환도 취약한 종목에서의 성공 + 잘생긴 외모 덕에 함께 주목을 받고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소리를 들으며 광고를 같이 찍기도 했다.
인기 종목인 축구가 당시 국제대회에서 부진하고 있던 시기라 "축구장에 물 채워서 태환이 수영장으로 쓰고 겨울엔 얼려서 연아 스케이트장으로 써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대급 최고 신기록 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어 피겨요정을 뛰어넘은 '피겨 여왕'이나 '연느'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당시 그녀의 전국적 인기는 국내의 웬만한 유명 연예인이나 탑급 한류 K 팝스타들도 훨씬 뛰어넘을 정도였다.
실력이 제대로 피어난 2009-10 시즌 때는 김연아가 광고한 제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핸드폰, 화장품, 악세사리, 금융광고로 광고계를 휩쓸어, 피겨 프로그램 보면서 김연아를 보고, 잠시 광고타임 동안 김연아를 보고,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김연아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인기가 신기했는지 외신에서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아닌 락스타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은퇴한 지 오래인 현재까지도 꾸준히 한국 피겨 스케이팅계에 관심을 보이고 기여하는 인물이다.
국민적 관심도가 김연아를 계기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것에 더해, 김연아 본인 역시 잠정 은퇴 수준이었던 공백기를 끊고 다시 돌아온 이유도 '한국 피겨계를 위해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김연아의 존재로 인해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났다. 이들이 바로 소위 말하는 '연아 키즈' 세대로, 김연아 시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선수 풀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도 많은 유망주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활동 이외에도 국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시상자로 나서기도 하고,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하고, 빙상장 건설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한국 체육계의 빈곤한 환경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녀의 활약 이후로 수많은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들이 생기고 있고, 범국민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또한 그녀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으로 밝힌 컴백 이유 중 하나가 '후배들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였다. 피겨계에 금전적 지원 및 여러 가지로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하다.
후에 한국 피겨계의 대모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다. 골프계에서의 박세리와 여러모로 위치가 비슷하다.
2012년 에듀모아에서 초등학생 6,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48%로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스포츠 역사를 뒤져봐도 국내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운동선수는 손가락에 꼽는다.
상술했듯 한국에선 생소했던 종목인 피겨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천재라는 점,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라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는 점, 올림픽 피겨 역사상 최악의 편파판정 피해를 당하고도 심판과 러시아를 원망하지 않고 깨끗이 승복했다.
김연아는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크게 경외하며 전 세대에게서 뜨거운 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는 인물이다.
여러 레전드 선수들과 더불어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웠던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전 세계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도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를 통해 피겨의 역사가 다시 쓰인다는 평을 했던 외국 해설의 말처럼 김연아는 엄청난 기술력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살아있는 레전드로 회자된다.
신채점제 이후 그야말로 완벽한 교과서를 써내려간 선수이자 기준이 되는 선수로서, 지금이야 웬만한 중상위권 여자선수들이 쇼트에서 70점을 그냥 넘기지만 김연아는 오래도록 깨지지 않던 여자 싱글 쇼트 70점 중반대의 벽을 깬 선수다.
외신과 전문가 해설진 이전의 역사적인 선수들까지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전무후무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김연아의 연기 스타일에는 북미 쪽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고 아예 김연아가 출전했던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는 그전까지 최대 판매량 2002년의 티켓 판매량 28,664장을 제치고 29,477장을 팔아 최고 판매량을 세우기도 했다.
2010년 10월 2일과 3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아이스 쇼는 1주일 뒤에 미국 방송국 NBC를 통하여 전국에 녹화중계되었다. 자국 선수인 에반 라이사첵의 아이스 쇼조차 1년 후에 방송했다.
아이스 쇼 표 역시 2일치가 전부 매진되기도 했다. 또 NBC 방송을 들어보면 김연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자주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한국에서 워낙 불모지였던지라 국내에서 주목을 못 받았을 때 아사다 마오의 대항마로서 제일 먼저 김연아에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마오의 우승을 가로막는 포지션이 포지션인지라 우호적이진 않다.
하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때를 비롯한 시니어가 많은 경기에서 마오가 실력과 멘탈에서도 김연아에게 밀려 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김연아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 방송을 들어봐도 김연아를 여왕(조오)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우뚝 일어선 김연아와,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면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아사다 마오의 환경차이 덕도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미 주니어 시절부터 유명한 선수였고 아사다 마오도 알려진 만큼 가정환경이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요즘에는 드래곤볼의 카카로트와 베지터의 라이벌 구도로 빗대어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진 듯하다.
그러다 시니어에 올라와서는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으로 충격을 안기자, 마오를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기술의 천재", 김연아를 "표현력의 천재"로, "기술의 마오 vs 예술의 연아"로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김연아의 기술도 만만치 않았고 그게 이후 점수로도 드러나, 2008년까지만 해도 둘의 전적은 아사다 마오가 근소하게 앞섰으나 2009년부터는 김연아가 크게 앞서게 되었다.
다시 평하자면 현역 활동 당시 데뷔부터 은퇴까지 최정점에 있었던 선수로서 세계신기록만 11회 경신한 압도적인 스케이터로 출전하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었다.
언제나 은반 위를 날아다니며 일단 출전해서 경기를 했다 하면 대부분의 대회란 대회들 마다 관객의 기립박수와 찬사를 받아내고 신기록 작성까지 이뤄내며 그야말로 전세계 피겨계를 주름잡던 대한민국이 배출해낸 진정한 여왕 이었다.
김연아는 2009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면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미국의 유니버설 스포츠 메인페이지에 "Long live the Queen!"이라는 문구가 김연아의 사진과 함께 크게 실리는가 하면, AP통신은 "경쟁이기보다는 즉위식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또한, 김연아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여 프리 스케이팅 경기를 마쳤을 때,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톰 해먼드 캐스터가 "Long li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이라고 외치며 찬탄했다.
이 생중계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김연아의 선수 생활을 관통하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한마디로 기록되었다.
4개의 메이저 대회가 생긴 이후 이 대회들을 모두 제패한 여자 싱글 선수로는 김연아가 최초다.
세계신기록만 11회를 세우면서 여자 싱글 선수 최초로 200, 210, 220점대를 돌파했고 경쟁 선수들을 20점 이상의 점수 차 로 따돌리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경이로운 실력을 갖춘 덕에 타국에서조차 최고의 선수로 대접받았었다.
부상을 극복하고 한창 날아다니던 2009년과 그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타 현역 탑싱들을 제외하고 미셸 콴, 카타리나 비트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비견되는 일이 잦았다.
김연아는 동시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중에서는 독보적 위치에 속하며, 한시대를 풍미한 스케이터 이자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선수 중 한명이라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해외의 유명 스포츠 언론이나 해설진들은 그녀가 시니어 데뷔를 하고 은퇴하던 시즌까지의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김연아가 참가하는 대회 or 김연아가 참가하지 않는 대회로 구분하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이전까지는 출전도 잘 못한 나라에서 어디서 이런 거물이 튀어나왔냐'고 신기하게 여기는 말이 나온다.
김연아가 은퇴한 이후 국제대회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나올 때마다 '김연아가 이끌고 온', 또는 '물꼬를 튼' 선수라고 언급된다.
현재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토대가 탄탄해졌다. 김연아가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해외 해설은 항상 김연아를 언급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헌정을 받고 있다. 나이키에서 다이아몬드와 금이 들어간 골든 자켓을 헌정받았다.
루이비통에선 트렁크를 헌정받았다. 트렁크는 2개가 만들어져 하나는 경매에 올라 그 수익금이 기부에 쓰였다.
미국에선 김연아를 위한 헌정시를 쓴 시인과, 김연아가 제목인 교향곡을 만든 작곡가가 나오기도 했다. 팬의 헌정노래도 있다.
김연아 기부내역
2007년
1월
피겨 스케이팅 꿈나무들에게
1천 2백만 원의 장학금 기부
5월
피겨 꿈나무 김현정 선수에게
LG생활건강 광고모델 수익금의 일부인
장학금 1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9월
아이비클럽 CF 출연료 중 1억 원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부
12월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시름에 잠긴 태안 지역
학생들에게 2천만 원 상당의 교복 100여 벌 기부
2008년
5월 The Daishin Investment Forum 2008 행사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피겨 꿈나무 선수를
후원하기 위한 5천만 원 상당의 기부금 전달
매일유업과 협의하여 4천만 원 상당의 유제품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1년간 지원
1억 원 상당의 교복 기부
12월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인형 1,000여 개를
김연아 선수가 직접 선정한 곳에 기부
피겨 꿈나무 일일클리닉 행사를 마친 후
'피겨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 을 갖고
적립된 행복기부금을 유망주 1인당 5백만 원씩
총 5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 중
2009년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하는 신입생들에게
1억 원 상당의 동절기 교복 기부
12월 25일 아이스쇼 Angels on ice를 개최.
공연 수익금 약 1억 4천만 원을 소아암 등
희귀병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전액 기부
피겨 스케이팅 김현정 선수
해외 전지훈련 비용 3천만 원 지원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가 책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인세
불우이웃 돕기 지원
아이비클럽 출연료 1억, 아이비클럽 측 1억,
총 2억 상당의 금액 기부
어려운 주변환경에도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키워나가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매년 1인당 수천만 원을 지원
'꿈을 키우라' 는 의미로 김연아의 의상 등을 무상 제공.
2009년
4월 월드비전 성남종합사회복지관에
소년소녀 가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1억 원 상당의 유제품을 기부
5월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4층 강당에서
강정원 행장과 함께 만든
'아우인형' 과 후원금을 유니세프에 전달.
12월 제이에스티나 김연아 컬렉션 수
익금 10%를 굿네이버스에 기부
2010년
1월
아이티에 1억 원 기부
4월
천안함 피격 사건 희생자 위로 성금 5천만 원 기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식 개선
라디오 출연료 4천만 원 전액 기부
7월
삼성하우젠 제로 피겨꿈나무 지원 2천만 원 기부
연아사랑적금 백혈병 어린이 후원금 1억 원 기부
8월
미주 동포 후원재단 '자랑스런 한국인상'
상금 1만달러를 유니세프에 기부
9월
'KB 연아 사랑나눔 기프트카드'의 판매 수익금으로
조성한 기부금 2천 6백여만 원을 난치병 어린이와
청소년들 소원 성취 위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전달.
12월
소녀가장들에게 5천만 원의 후원금 전달
2011년
5월
2011 세계선수권 2위 상금 2만 7,000달러
(한화 약 2,920만 원)를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12월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바보의 나눔'에 1천만 원 기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다문화가정 어린이 후원금 1천만 원 전달
피터 유릭이 그린 초상화의 로열티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
2012년
1월
아이유와 함께 발매한 '얼음꽃’ 음원수익을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팀에 전달
2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 5명에게 후원금 전달
4월
KB국민은행 '피겨퀸 연아사랑 적금'으로 조성된
기부금 1억 원을 한국 백혈병 어린이재단에 전달
6월
남수단 학교 건립을 위해
가톨릭 살레시오 수도회에 7천만원 기부
2013년
1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치병 어린이 5명에게 후원금 전달
4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 유니세프를 통해
2013 세계선수권 우승 상금 전액 기부
11월
태풍 하이옌 피해를 입은 필리핀의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 달러 전달
2014년
4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1억 원 기부
2015년
4월
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 달러 기부
2016년
2월
김연아 공식 팬카페에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지 6주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 2주년을 기념
유니세프에 기부를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중
조용히 나타나 5천만원 기부
2018년
6월
박소연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지목을 받아
승일희망재단에 루게릭 요양병원 건설 기금 기부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아이스 쇼
레볼루션 온 아이스의 출연료 전액을
아프리카 사이클론 피해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
2019년
4월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5천만 원 기부
2020년
2월 김연아 공식 팬카페에서 그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수상 10주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지 6주년 기념
유니세프 기부 모금 활동 진행 중 5천만 원을 기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고통 받는
대구, 경북 지역을 위해 5천만 원을 추가로 기부
팬들과 함께 모금한 기부액 1억 850만 원 전체를
유니세프 대신 경상북도 권역 치료기관인
경북대학교 병원에 기부했다.
2021년
6월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백신 공급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10만 달러(한화 약 1억 1000만 원)을
코백스 퍼실리티에 기부
2022년
3월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역 복구에
재해 성금 1억원 기부
2023년
2월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 어린이를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10만 달러 (한화 약 1억 2천만 원) 기부
총 기부 내역을 합산하면,
유니세프를 통한 기부금은 총 23억 원,
유니세프 외 기부금 총 28억 원, 합쳐서 51억 원.
김연아 대회 수상내역
시니어 대회
1. 시니